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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 부상을 이기고 사범연수까지
  게시일 : 2005년 12월 09일

허리 부상을 이기고 사범연수까지

김양자

  1997년도 겨울에 저는 남편과 함께 청계산으로 등산을 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그만 빙판에 미끄러졌습니다. 넘어진 순간 정신은 있었지만 몸이 움직여지지 않아 눈을 뜨고 주위를 살펴보니 등산객들이 순식간에 모여 있었고 “틀림없이 머리를 다쳤을 거야”, “119를 불러야지”, “병원으로 빨리 가야지” 등의 말이 귀에 들렸습니다.
  그때 어찌할 바를 모르는 남편에게 머리가 아니고 허리를 다친 것 같다고 했더니 누군가가 “빨리 병원으로 갑시다” 라고 말하였다. 저는 여자 등산객 두 사람의 부축을 받아서 삼성의료원 응급실로 옮겨졌습니다. 응급실에 환자가 어찌나 많던지 기다리다가 아파서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한참을 기다려 차례가 되어 진찰을 받았는데 척추뼈 하나가 내려앉아 안으로 들어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허리를 움직일 수가 없었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다친 허리 때문에 바로 앉지를 못했고 벽에 기대거나 옆으로 앉아야 했고 그것도 방석을 깔지 않으면 찬 냉기가 허리에 올라오면서 쑤시고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또 누울 때도 언제나 옆으로 몸과 다리를 쪼그리고 자야만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전부터 여의도 순복음교회 제 2성전에서 성가대원으로 봉사를 하고 있던 저는 예배 때는 더욱 정성을 드려 예배를 드렸고 찬양 중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면서 저를 치료해 주시고 고쳐 달라고 열심히 간절히 기도도 했습니다.
  그럭저럭 시일이 지난 뒤 조금씩 움직일 수 있고 걸을 수도 있게 되어 운동을 해야 되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다 집 바로 앞에 서초구민체육관이 생겨 거기서 제 몸에 맞는 운동으로 물 속에서 걷기도 하고 몸을 움직여 보려고 수영교실에 등록을 했습니다.
  병원에서 물리치료를 받는 한편 수영장 물 속에서 운동을 하는 동안에 의사 선생님이 많이 좋아졌다고 하면서 운동을 계속하라고 권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용기를 얻고 꾸준히 운동을 했더니 물에서 걷는 것은 물론이고 수영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무리를 했는지 갑자기 허리가 또 아프기 시작해 병원에 갔더니 혈압도 높아지고 척추부상으로 키도 줄고 몸에 무리가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수영을 그만두게 되었고 일주일에 한번씩 병원에 가서 의사선생님 지시에 따라 재활실에서 운동을 했습니다.
  다친 허리를 꼭 고쳐야 되겠다고 결심을 하고 집에서도 일찍 일어나서 걷기도 하고 맨손체조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종이 하나를 들고 와서 구민체육관에 단전교실이 생겼다고 하며 국선도 수련을 하면 다친 허리에도 좋을 것이라고 하면서 그 다음날 상의도 없이 등록을 하고 돌아와서는 같이 수련을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몸도 아직 불편하고 국선도가 생소하기도 하여 망설였지만, 남편은 오래 전에 직장 다니면서 단전호흡 수련을 한 적이 있었고 퇴임 후에도 매일 같이 해야 되겠다고 하고 있었던 중이라 몹시 좋아하는 것 같았습니다.
  드디어 첫 개원하는 날에 저는 남편을 따라 체육관 2층 단전교실로 올라갔습니다. 낯선 사람이 모인 가운데 흰 도복에 검은 띠를 매고 선 여자 사범님의 당당한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남편은 정사님을 뵙고는 몹시 반가워하는 것 같았습니다. 남편은 예전에 했던 수련이라 잘 받아드렸지만 저는 처음에는 쉬워 보였는데 할수록 힘 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흰 띠에서부터 시작해 띠가 바뀔 때마다 저도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허리를 굽히고 펼 때마다 너무나 힘들었고 굳어 있는 몸의 이곳저곳이 움직일 때마다 너무 아파서 매일 몸살을 앓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한쪽이 나으면 다른 쪽이 아프고 어깨가 아프다가 팔이 아프고 심지어 두통, 치통까지 생기기도 했습니다.
  행공 중에는 호흡을 맞추다 보면 동작이 안 되고 동작에 신경을 쓰다보면 호흡이 거칠어지고 하면서도 호흡과 동작이 어느 정도 된다 싶으면 다음번의 동작으로 바뀌곤 하니 아팠다 나았다하기 일수였습니다. 그렇게 하는 동안 어느새 몸이 천천히 좋아지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수련 할 때는 몹시 힘들어하면서도 마치고 나면 그렇게 몸이 가볍고 상쾌할 수가 없었고 일을 해도 피곤이 덜 했습니다.
  그리고 조신법 중 굽히기 힘들었던 허리도 많이 굽힐 수 있게 되더니 지금은 앞가슴이 바닥에 닿게 되었으며 돌릴 수 없었던 허리도 돌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허리를 다칠까봐 겁이 나서 처음부터 해보려 하지 않았던 두좌법도 허리가 좋아지면서 한두 번 거듭하다 보니 지금은 관지두좌법도 할 수 있고 삼각두좌법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국선도를 시작한지도 어느덧 3년이 되었습니다. 우리 수련장의 경우 처음 시작할 때는 수련자가 30명 정도였는데 2~3개월이 지나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나이든 사람 그리고 젊은 학생들까지 또 교통사고로 걸음을 제대로 걷지 못해 부축해 오는 사람 등 갖가지 사연의 여러 사람들이 국선도가 좋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곧 40명으로 늘어나서 도장이 꽉 차게 되었고 나중에는 들어오고 싶어도 자리가 없어서 등록을 못하는 사람이 많이 생겼습니다. 그러다가 다음 해에 드디어 한 반이 더 만들어져서 지금은 AㆍB 두 반에 각각 40명씩 모두 80여명이 수련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두가 얼마나 열심인지 그만 두는 사람이 없어 등록을 못하는 사람이 지금도 많다고 합니다.
  우리 수련회원들이 이렇게 모두 열심히 잘 하고 있는 것은 채승희 사범님이 자상하시고 친절히 지도를 잘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매월 첫날을 회원 ‘친교의 날’로 정하여 그 날은 수련은 조금하고 나머지 시간에 신입회원 소개와 각자 체험도 발표하고 또 국선도노래를 부르기도 합니다. 그밖에 한 달 동안 한번도 결석하지 않고 수련한 회원에게는 양말, 비누 등 작은 생활용품을 월 개근상으로 주고 있습니다. 또 같은 행공단계끼리의 회원들이 한두 달에 한번씩 모여서 식사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고 합니다.
  이렇게 국선도를 시작하여 원기단법 중편을 할 때 남편이 이번에는 사범 교육을 받자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남편의 권유로 처음 국선도를 하게 되었고 또 건강이 좋아지기는 했지마는 사범은 어림없는 일이라 한사코 안 하겠다고 했으나 남편은 나보다 조신도 잘하고 하니 별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하면서 또 같이 등록을 하였고 그래서 지금 10기 사범연수를 함께 받게 되었습니다.
  교육을 받는 사람 중에는 다행히 여자들도 많았고 더욱 반가운 것은 옛날 여고 동문 후배가 있어서 이야기 벗이 되어서 좋았습니다. 그런데 사범이 되는 길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정사님 강의 내용을 지금은 차츰 이해하게 되었습니다만 처음에는 생소한 내용이 많아서인지 저에게는 몹시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오공법은 여러 번 반복을 하는데도 잘 안 되고 익숙해질만 하면 순서를 잊어버리곤 했지만 지금은 많이 나아졌습니다.


△ 몸을 찾아서
▽ 최소의 공간으로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는 평생수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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