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덕당 국선도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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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선도의 시원

 인간은 누구나 무병장수하고 행복한 생활을 영위하려는 욕망을 가져왔습니다. 이것은 동서고금을 통하여 인간의 공통된 염원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조상은 이 염원의 실현을 위하여 일찍부터 하늘을 숭상하고 자연의 법칙의 법칙에 순응하는 지혜를 보여왔습니다. 즉 대자연의 순리에 역행하지 않는 지혜를 터득함으로써 도의 길을 걸어왔던 것입니다. 인간은 원시시대부터 오랜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 질병과 노쇠에서 벗어나 존귀한 생명을 온전히 유지하기 위한 방법을 찾고 찾았습니다. 마침내 천리에 순응하여 자연과 더불어 장생 하는 이치를 알게 되었으며, 자연법칙을 거역하면 일신의 병고를 초래함은 물론 제 명대로 살지 못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즉 소우주인 인간은 대우주인 자연법칙에 순응함으로써 자연의 본체인 대우주와 상통교합 조화를 얻게 되어 영생하게 된다는 원리를 터득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주의 본질로 태어난 인간이 성장 장성 노쇠한 뒤 사후 우주의 본향인 진리의 천계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이치를 터득한 우리조상들은 하늘을 숭상하는 제천사상을 바탕으로 개인내지 집단이 수련을 통하여 장생불사의 개체적 생명의 연속을 도모했습니다. 또 하늘과 사람을 하나로 보려는 천일합일사상은 생노병사의 굴레에서 벗어나 선인, 진인, 신선으로 나타나는 개인생명의 무병장생을 추구하는 수련방법을 창안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민족 고유의 심신수련법입니다.
  우리조상들의 사상에는 도를 숭상하고 도를 닦는 정신이 뿌리깊게 자리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법통이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도를 마치 먼 옛날의 신화정도로 여기거나 도를 미신처럼 취급하여 사람의 운수나 점치고 특정한 사람에게만 전수되는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으니 이것은 국선도의 연원과 사상 , 전통과 유래를 깊이 뚫어 보지 않은 무관심의 소치라 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도를 닦는 것은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여 자연과 상통하자는 것이요 , 국선도를 수행하는 것은 선인적인 인간상을 구현하자는 것입니다. 예로부터 선인들은 몸가짐이 청수하고 대자연의 이치를 통달하여 세상일에 근심걱정하지 않으며 , 그 성격은 관후 인자하여 만물을 사랑하고 만사에 형통하여 만인의 존경을 받는 성품을 가졌으며 사물을 투시하고 미래를 예지하는 초인간적인 능력을 구비한 전지전능한 사람으로 추앙되어 왔습니다.

 

 

2. 國仙道의 역사적 의미

  국선도에 대한 역사를 이해하는데는 우선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옛날부터 직접 전해내려온 선맥(仙脈)에 관한 온전한 기록이 없으며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 고기(古記)의 내용을 중심으로 선도의 법통에 가까운 역사를 인용할 정도입니다.
  오늘날까지 널리 알려진 문헌과 현재 발간되고 있는 도서를 통하여 상고시대와 상고시대이후, 현대로 구분하여 알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상고시대


  상고시대의 선사(仙史)에 관한 문헌은 직접 전해 내려온 것은 없으나 후세의 기록을 더듬어 그 당시의 선사나 연원을 추론해 보는 정도입니다.

○ 조여적(趙汝籍)(조선 선조때)이 편찬한『청학집(靑鶴集)』의 기록

  선도의 법통에 대한 기록은 광성자 ⇒ 명유(明由)⇒ 환인진인(桓仁眞人)⇒ 환웅천황(桓雄天皇) ⇒ 환검선인( 단군성조)로 이어져 내려왔고 환검선인 단군성조는 국사 자부선생(紫府先生)과 더불어 선국(仙國)을 중흥하였고 합니다.

○ 백미선인의 『백악총설(白岳總說)』의 기록

  선도는 환인을 조종(祖宗)으로 하여 단군성조의 후예 문박씨(文朴氏)에 의하여 온 누리에 전해졌고, 단군 건원 초에 국사 자부선생에게서 배운 황제헌원(皇帝軒轅)과 상고시대 선인 광성자를 통하여 중국에 전해진 것이라고 합니다.

○ 유득공(柳得恭)의『사군지(四郡志)』

  평양은 본래 선인왕검이 재 창업한 역사의 근기라 하였습니다.

◎ 상고시대 이후 조선시대

○ 고구려 고분벽화의 삼선도형(三仙圖形)과 신선도상(神仙圖像)과 다른 문화유적들에서 국선도가 보급 발전되었던 흔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고구려의 조의선인(早衣仙人) 제도 : 고구려 제22대 안장왕때 조의선인으로 선발되었던 을밀선인(乙密仙人) 문하에는 조의선도 3천명이 단군선조의 태평성국으로 복고하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는 다물흥방지가(多勿興邦之歌)를 부르며 심신을 수련하였다고 합니다.

○ 삼국사기의 고운(孤雲) 최치원선생의 난랑비 서문 내용입니다.

  國有玄妙之道曰風流 說敎之源備詳仙史 實乃包含三敎 接化群生?????
  (이 나라에는 현묘한 도가 있으니 풍류라 하였고 설교의 기원은 선사에 기록되어 있거니와 이 도는 삼교가 포함된 바로서 많은 민중과 접촉하여 교화하였다. ???)
  신라의 풍류도(風流道), 풍월도(風月道) 등 국선(國仙) 화랑의 사상은 모두가 국선도 사상이 주축이 되었던 것입니다.
  앞의 비문 내용에 비추어 보면 국선도가 일찍이 우리 동방민족의 주체사상으로 크게 근기를 이루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삼국사기』의 기록

  김대문(金大問)<신라 제33대 성덕왕 때> 의 화랑세기(花郞世紀)
  ⇒ “花郞者 仙徒也”에서 선학(仙學)을 배우는 무리를 화랑도라 합니다.
  576년 신라 제24대 진흥왕(37연)때 창설된 화랑도는 15~16세의 청소년으로 이루어진 수양단체로서 국선도(國仙道), 풍류도(風流道), 풍월도(風月道), 낭도(郞道), 단도(丹道)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었습니다.
  화랑도는 명산대천을 찾아다니면서 심신을 단련하고 교양을 쌓았으며 국가가 필요로 할 때에는 호국의 무사정신으로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 과감히 몸을 바쳤습니다. 또한 이들은 전통을 존중하며 신의와 협동정신을 기르고 인격을 닦음으로써 풍류의 멋과 선인의 고매함을 지닌 문무를 겸비한 인재가 되고자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기풍은 후일 삼국을 통일하는 힘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 김범부(金凡父)의 『화랑외사(花郞外史)』

  ⇒ 물계자와 백결선생의 설화
  물계자의 가르침을 이어받은 백결선생편에도 조식법(調息法), 즉 숨 쉬는 법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고구려의 연개소문과 신라의 김유신이 산에 들어가 수년간 수련을 했다는 언급 역시 이 같은 호흡 수련을 기초로 한 공부를 말하는 것입니다.
  한국 민족 고유의 전통과 이념의 발로인 화랑도의 정신이 신라의 멸망과 더불어 소멸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고려, 조선시대로 넘어오면서 불교, 유교 등의 득세와 외세의 침략 등으로 선풍(仙風)은 쇠퇴하고 선가(仙家)는 은둔하는 경향을 보여왔지만 상고시대로부터의 도맥은 면면히 이어져 내려왔습니다.

◎ 조선말기


  민족의식을 바탕으로 새로이 정립된 민족종교인 동학(東學), 대종교(大倧敎), 증산교(甑山敎) 등에 일부 수용되기도 하였습니다.
  삼국시대 이후 즉, 선풍이 쇠퇴한 이후의 선도 전승의 흐름을 대략 다섯 가지 갈래로 보고 있는데,
  첫째 은둔하여 도맥을 이어가는 흐름,
  둘째 불교 속에 침투한 흐름,
  셋째 속세에서 무속화 되어간 흐름,
  넷째 중국 도교의 영향으로 종교적으로 의식화한 흐름,
  다섯째 양생법의 내용으로 지식층에 수용되는 흐름 등으로 크게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國仙道의 도맥은 국운의 쇠퇴, 융성과 부침을 같이하면서 역사의 전면 또는 이면에서 나름대로 주어진 역할을 다하여 우리 겨레의 숨결 속에 면면히 전해져 내려온 것입니다.

◎ 현대시대


  현대에 이르러 국력의 신장과 더불어 민족 전통문화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고조되면서 국선도는 새로이 복원, 체계화되는 과정에 있으며 과거 산속이나, 은둔자들을 통하여 몇몇 사람에게 제한적으로 전해져 내려오던 단전호흡법이 70년대에 들어와 삼국시대의 옛 명칭을 복원 국선도라 부르게 되었고 한편 수련방법도 현실상황에 맞도록 정비하여 누구나 가정과 직장에서 수련할 수 있도록 개선하였습니다.
  80년초에는 불과 수십 여개의 개인수련장과 직장을 통하여 보급되든 상황에서 90년 후반에 들어와 서울시내 각 구청을 시발로 전국적으로 보급되었으며 2000년도에는 동사무소의 문화교실등으로 확대되어 수련인원도 수십만명에 달하는등 급속도로 확대되어 국민들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지켜주는 수련법으로 생활하면서 일하는 생활선도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특히 덕당국선도를 이끌어가시는 덕당정사님은 생활선도를 주창하시고 그 이념으로 70년도부터 국선도의 보급과 발전에 전력을 다하시며 하루의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쉬지 않고 노력하고 계십니다.

 

 

3. 국선도 명칭의 유래

 선(仙)이라는 것은 인간과 자연의 합일을 뜻하는 것으로 인간은 소우주요, 자연은 대우주를 말합니다. 소우주인 인간이 대우주인 자연에 합일되는 우아일체(宇我一體)의 경지를 선의 경지라 하며 이를 위해 인간의 생명체인 정/기/신(精/氣/神)을 닦는 수련을 국선도라 부릅니다.

○ 상고시대에는 국선도가 신도(神道), 고신도(古神道), 현묘지도(玄妙之道), 백도(白道), 신선도 (神仙道) 등으로 불려졌습니다.

○ 삼국시대에 와서는 화랑도(花郞道), 낭도(郞道), 국선도(國仙道), 풍류도(風流道), 풍월도(風月道), 단도(丹道), 조의선도(早衣仙道), 국선(國仙), 풍월주(風月主) 등으로 불렀다고 합니다.
  또 화랑을 선도(仙徒)라 하여 선학(仙學)을 배우는 무리라 하였는데, 화랑이란 이름은 신라 법흥왕이 풍월주인 위화랑(魏花郞)을 사랑하여 이 때부터 선도(仙徒)를 화랑이라 부른데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국선도는 역사적 배경과 시대적 상황에 따라 다양한 명칭을 사용했습니다.

 

 

4. 국선도의 역사적 수난

   오랜 전통과 역사를 지닌 국선도의 수련법이 신비로운 딴 세상 이야기나 허황된 옛날 이야기 등으로 백안시되고, 생활과 밀착된 양생법으로 널리 보편화되지 못한 연유는 여러 면에서 찾을 수 있겠지만 우선은 역사적으로 사대적 보수적인 유가사상(儒家思想)과 유림세력이 시대의 흐름을 주도해 옴으로써 우리의 고유사상이 제대로 역사의 주역 역할을 하지 못했던 것이 가장 큰 이유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점은 단재 신채호의 〈朝鮮歷史上 一千年來 第一大事件〉이란 논문에서 고려시대의 묘청의 난을 논하며 명백히 언급하고 있습니다. 즉 묘청의 난은 낭불양가(郎佛兩家) 대 유가(儒家), 국풍파(國風派) 대 유학파(儒學派), 독립당 대 사대당, 진취사상 대 보수사상의 싸움으로 전자의 대표인 묘청이 후자의 대표인 김부식에게 패함으로써 그 이후의 역사가 사대적, 보수적, 속박적인 유가사상에 정복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낭불양가란 낭가와 불가를 가리키는게 단재가 특히 중시한 것은 낭가로서, 이것은 국선도의 수련을 통한 심신을 연마 하였던 화랑도를 말합니다.
  다음으로는 국선도에 관한 기록들이 현재까지 온전하게 보존되고 있는 것은 드물며, 있다 해도 단편적이거나 비체계적이어서 문헌의 고증력이 약한 상태로 비전되어 왔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사료의 유실은 과거 선조들의 행적을 더듬어 보는 데 치명적인 타격을 주는 것으로, 줄잡아 10여 차례의 사료수난의 역사가 있어왔습니다. 이러한 큰 사실 외에도 가깝게는 조선 5백년사를 돌아볼 때, 안으로는 사리사욕과 명분을 앞세운 파벌싸움이 계속되고 봉건적, 사대적 사상이 주류를 이루고 있어 우리의 고유 민풍(民風)이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하였으며, 밖으로는 잦은 외적의 침략으로 사회적인 불안이 가중되다가 마침내는 일제에게 국권마저 수탈 당하고 그들의 사슬에 얽매여 치욕적인 생활을 면치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우리 민족 고유의 사상과 얼(혼백)은 송두리째 짓밟혔으며, 일제는 그 많은 사적과 비전의 문헌을 모두 약탈하거나 변조, 소각까지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고유의 민풍을 상실하게 된 결정적인 원인 가운데 하나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국선도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고조되고 실제로 수련하는 사람이 늘어가는 추세를 보이고 있어 우리 선조들의 위업과 유훈이 계승될 조짐을 보이니 무척 다행한 일입니다. 새로운 전기, 도약의 시대를 맞이함에 있어 선조들의 지혜와 웅혼한 기상을 본받고 되살림은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의 당연한 과제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