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6 ~ 1969년 : 개인적인 수련시기
  1956년 9월경에 공수도 창무관에 입관하여 안윤식 관장(사망)과 변용만 사범으로부터 무술을 익히게 되었고 1957년 10월경 부산 해운대 동백섬에서 봉강(峰江)선생님을 만나게 되어 처음으로 내공호흡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선도단전수련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1960년 이후 군 생활을 하면서 해병상륙사단에 무도관을 개관하여 후배 양성에 노력했고 사단 무술교관으로 활동했습니다. 1967년 7월 월남에 파견된 청룡 부대에 근무하면서 대민사업의 일환으로 열렸던 수차례의 무술시범을 통해 국위를 선양했습니다.
 
1970 ~ 1979년 : 국선도 수련법 정착시기
  1968년에 월남에서 귀국, 1969년 서울에 근무하게 되어 수련에 전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하여 훌륭한 스승을 찾아 다녔습니다. 1970년 11월 9일에 청산거사를 만나 선생의 산중수련내용을 듣고 그날로 문하생이 되었습니다. 종로3가 피카디리 극장 골목 2층의 10여평 되는 조그 마한 장소에서 시작하였습니다.
  1971년 1월 10일 동료 몇 사람과 뜻을 모아 청계천 4가에 정신도법(精神道法) 총본원을 개원하여 청산거사를 원장으로 모시고 적극적으로 수련할 수 있는 장소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1971년 3월 20일 문교부 38호 사회단체 정신도법 교육회로 등록이 되어 공인된 단체로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동년 8월 4일에 청산거사는 수련장에서 손을 떼게 되었고 임의봉, 김성환(덕당), 송봉래 3인이 인수를 받았으나 여러 가지 사유로 동년 9월 30일에 정신도법총본원을 폐관했습니다. 당시 내공법에 매료되었다가 축지법, 장풍, 경공술 등의 허실을 알게된 3인(송봉래, 박성진, 덕당)은 많은 사람들이 수련의 효과를 공유할 수 있도록 수련법의 방향을 건강법으로 전환하여 지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1971년 3인이 주축 이 되어 10월 20일에 종로3가 소재 백궁빌딩 선도단전호흡 수련원(선도원)을 개원하였고 본격적인 단전수련을 시작하였습니다. 1972년 5월 17일 청산거사를 다시 선도원 원장으로 모시고 선도원 운영권을 인계하게 되었습니다.
 
1980 ~ 1989년 : 존폐의 시련기(체계정비, 이론정립시기)
  70년대의 숱한 문제점들을 해결하지 못한 채 험난한 가시밭길을 혼자 절어가야만 하는 어려운 시기를 맞이했습니다. 국선도의 정체성 문제, 도덕성 문제, 수련법과 이론의 체계 문제등 실로 중요한 사안들이 산적한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새로운 수련법을 받아들이는 회원들의 자세, 수련법을 통해서 얻어지는 효과, 지도하는 사범과의 신뢰문제 등이 정리되지 않는 한 뿌리를 내릴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하고 강한 의지와 인내심을 가지고 수련 지도에 임하겠다는 각오를 다지며 광고, 선전지, 방송이나 신문 잡지 등 일체 홍보매체를 이용하지 않고 몸으로 뛰기로 결심했습니다.
 
1990 ~ 1999년 : 성장 및 발전시기, 타 단체와의 경쟁시기
  국선도 수련법이 사회에서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느냐 하는 갈림길에 있었던 중요한 시기가 지난 80년대입니다. 몸으로 직접 뛰면서 국선도 수련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을 높였고 실제 수련자로부터 질병예방, 지병치유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는 통계가 나왔으며, 스트레스를 완화시키는 정신적인 건강과 수양에도 좋다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80년대의 기본적인 효과와 수련의 열기에 힘입어 90년대는 누구나 손쉽게 수련할 수 있는 체계를 연구발표하기에 이르렀고 조직의 재정비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습니다. 90년대 전반기인 1992년 3월 21일에 사회단체 등록에 관한 법률 제4조에 의거 대한국선도협회로 등록이 승인되었습니다. 따라서 대한국선도협회의 이념은 현세적 삶의 질을 높이는 생활 속의 수련법으로 생활선도(生活仙道)를 주창하게 되었고 생활선도의 이념과 실천요강의 이론을 정립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90년도 상반기에는 조직 강화와 지도자 양성을 위하여 청소년 체육부에서 주관하는 사회체육연수과정에 참여하여 사회체육지도자(국선도 3급) 60명을 배출하였으며, 1994년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국선도협회에 사범연수과정을 설치하여 1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 연수과정을 이수한 사범이 900여명이나 되는 획기적인 토대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방송 및 CF광고에 출연함으로써 국선도를 대외에 알리는 중요한 계기가 되어 지원, 분원, 단전교실이 기하급수로 늘어나는 고속성장의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후반기에는 출판사를 등록하여 계간지「국선도(國仙道)」를 제작하게 되었고 국선도 지도자회 등 산하 단체의 출범 및 활동이 시작되었습니다.
  특히 90년대 이후로 매년 개최하는 창립총회 및 진기승단대회를 수련장이 아닌 서울의 중심가인 문화의 전당 세종문화회관에서 개최함으로써 국선도의 위상을 높여 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00년 ~ 현재 : 성장, 발전을 위한 제도적 정착시기,
                   질적향상을 위한 재정비 시기, 21세기 환경에 맞는 도약의 시기
  90년대 후반기에 들어서 국선도 단전교실이 확산되어 국선도 진흥과 보급에는 많은 발전이 있었으나 문제점도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국선도 수련법은 다른 운동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취미나 기록을 위한 운동도 아니며 상대와 승부를 내는 운동도 아니고 적당하게 육체만을 사용하는 운동은 더구나 아닙니다. 국선도 수련법의 동작 하나 하나는 인체의 생리적 기능과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수련의 대상은 자신의 몸과 마음이며, 기의 수련을 통해서 자신의 생명력을 강화시키는 수련법입니다. 어찌 경솔하게 수련할 수 있으며, 경솔하게 수련을 한다면 어떻게 건강에 도움이 되고 수양이 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양적(量的)인 수련보다 질적(質的)인 수련이 중요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육체적인 수련도 중요하지만 정신적인 수련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2000년대에는 덕당이 가장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 온 단전행공의 허와 실 그리고 덕당국선도의 근간이 되는 호흡인 기회전법(氣回傳法), 기(氣)의 주향규율(走向規律)에 의한 운기행공(運氣行功), 사람의 체질에 따른 사상체질호흡법(四象體質呼吸法)과 질병의 경중과 기력(氣力)의 성쇠에 따른 삼기체증상호흡법(三氣體症狀呼吸法) 등의 연구결과를 책을통해서 소개하기로 하였습니다. 앞으로 21세기는 모든 수련단체가 선의의 경쟁을 통해 서로가 발전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다른 단체를 헐뜯고 짓밟는 언행이나 행동은 수도하는 입장에서 볼 때 이미 자격을 상실하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미래의 道法 발전을 위해서 단체간의 교류와 연구발표을 장려하고 발전적 미래상을 갖는 것이 덕당이 지향하는 수련 방향입니다.
 
2006년 1월 덕당국선도